
기름진 초승달 지역
이뜻은 서쪽으로는지중해와 맞닿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막과 잇닿아 있으며 북쪽으로는 터키의 타우루스 산맥 동쪽으로는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을 경계로 하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지역 안에서도 지중해 연안 이라크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는 땅이 매우 기름진 곳입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상류로부터 흘릐온 기름진 흙을 강 유역에 쌓아 놓았으며 이것이 해마다 쌓였으므로 땅을 기름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몇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기에 농사를 쉽게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두 강의 강물이 넘치는 시기가 같지 않아 짐작할수 없고 규모도 달랐습니다 또한 강물이 넘친 뒤에는 땅이 늪지대로 변했는데 그 땅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으려면 물을 잘 빼야 했습니다 더욱이 여름에는 비가 제때오지 않아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물을 제대로 보내고 빼는 시설이 필요했습니다 기원전 27세기 이전에 메소포타미아 남동부에 옮겨 온 수메르인들은 북쪽에 자리잡고 있던 아카드인들보다 이러한 어려움을 현명하게 대처했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수로와 저수지를 잘 만들었으며 이 사실들은 근대에 들어와서 투르크족에 의해 파괴될때까지 그들의 농경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메르 문명
수메르인들은 땅이 기름진 초승달 지역의 동부 산악 지대에서 살다가 메소포타미아의 남동부 지역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들은 처음의 거주지에 있을 때 부터 어느 정도 문명이 발달해 있었으며 또한 그들이 새로 옮긴 메소포타미아 남동부 지역도 완전한 미개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쇠붙이와 돌을 함께 사용하는 문명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습니다 이곳에 수메르인들이 나타난 때는 기원전 3500년경 이었습니다 이 무렵에 수메르 인들은 이미 문자를 쓰고 있었으나 그들의 문자가 문명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치기 까지는 수백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수메르인들이 처음으로 사용한 문자는 상형문자 였는데 이 상형문자는 형체가 있는 물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로 낱말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산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산의 모양을 그려야 하고 새를 나타내려면 새의 모양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타내기가 어려운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뒷날 그들은 쐐기 모양으로 뜻을 나타낸 설형문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전설과 영웅들의 이야기 등을 영원히 보유하기 위해 뼈나 갈대 줄기를 펜으로 삼아서 점토판 위에 설형문자를 찍고 불에 구원 보존 했습니다 뒷날 페니키아 인들이 이 설형문자를 간단하게 만들었으며 이 문자에 모음이 보태져서 오늘날 쓰고있는 알파벳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돌이 매우 귀했으므로 수메르인들은 진흙을 빚어 만든 벽돌로 집이나 필요한 건물들을 세우고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로도 만들었습니다 또한 수메르 인들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인구 만명 정도의 도시 국가를 여러개 건설 했는데 그 도시국가들은 각각 독립되어 있었으며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성을 쌓고 성 밖으로 빙둘러 연못도 파놓았습니다 주민들은 주로 도시 주변의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농민이 대부분이었으나 복수 도자기공 대장장 등도 있었습니다 도시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승려인 사제 계급이었고 화폐는 쓰이지 않았으며 농민과 장인간에는 물물 교환이 이루어 졌습니다
수메르인의 종교
수메르인은 우주가 맨 처음에 신에 의해 창조되어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키면서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한 우주 및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은 초기의 전설과 신화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우주 최고의 신으로 안 을 섬겼는데 안은 신들의 회의를 이끌어 나갔으며 그의 아들 엔릴은 대기와 폭풍과 홍수의 신이었습니다 엔릴이 다스리는 자연 현상들은 수메르인들이 가장 두려워 했기 때문에 그들은 엔릴을 가장 강력한 신으로 떠받들였습니다 엔릴은 전쟁의 신이라는 지위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들 중에는 자신의 도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신은 인간을 처음으로 만들어 자기에게 봉사하라고 했으므로 인간이 그뜻을 어기면 곧 파멸을 맞게 됩니다 그 예로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역사 시대의 대홍수와 관련된 홍수 신화를 둘수 있습니다 그 밖의 기본적인 신화나 의식 그리고 신들도 수메르인의 계승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져서 메소포타미아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
수메르인의 문학 작품은 주로 신화를 토대로 한 것으로써 많은 신화의 전설들은 각 도시의 건설지와 유명한 왕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문학 작품의 주제나 내용은 도시의 건설자 왕들과 신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었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수메르의 도시 우르의 제3왕조 기간 동안에 서사시로 쓰여져서 점토판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우르크 시의 왕이었던 길가메시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유프라테스 강가의 우르크 시에는 길가메시라는 용맹스런 왕이 있었는데 그는 싸움터에서는 용맹 했으나 백성들에게는 사나운 왕이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견디다 못해 신들에게 기도를 울렸고 신들은 회의를 열어 의논한 후에 왕을 혼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진흙으로 엔키두라는 인간을 만들어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에 보내어 자라게 하였습니다 엔키두는 맹수들과 함께 살면서 용맹스럽게 자랐습니다 한편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소문을 듣고 그를 무능하게 만들기 위해 아주 예쁜 미녀를 밀림으로 보냈습니다 얼마후 맹수들과 자라 아무것도 모르는 엔키두는 난생 처음으로 보는 미녀에게 반해 날마다 빈둥거리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신들은 이 사실을 알고 엔키두가 정신을 차리도록 깨우쳐 주었고 엔키두는 비로소 정신이 번쩍들어 미녀를 뿌리치고 길가메시를 혼내주기 위해 우르크 시로 떠났습니다 엔키두가 우르크 시에 다다랐을때 마침 축제가 열리고 있어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그때 징소리와 피리 소리가 들리면서 신전에 제사 지내러 가는 길가메시 왕의 행렬이 나타났습니다 행렬이 시가지를 지나서 신전 앞에 이르자 왕이 가마에서 내려 신전 앞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군중들 속에서 엔키두가 뛰어나와 왕을 가로막으며 "내가 신들은 대신하여 그대에게 벌을 주기 위해 왔다" 면서 싸움을 걸었습니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도전을 받아 승낙하고 대결하였습니다 두사람의 싸움 실력은 막상 막하여서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왕은 싸우는 도중에 왕은 엔키두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어 싸움을 그치고 친구가 되자고 하였습니다 엔키두도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리하여 왕과 엔키두는 모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모험이 점점 지나쳐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엔키두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엔키두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 나머지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아 떠났으며 길가메시는 온갖 고생을 겪은후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슈롯파크라는 마을에 사는 우트나피슈팀 이라는 노인이었습니다 왕은 그 노인에게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 했으나 노인은 딱 잘라 거절 했습니다 왕이 끈질기게 애원하자 마침내 비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때 노인은 자신이 겪었던 홍수 이야기를 들려주고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약초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왕은 노인이 가르쳐 준곳으로 가서 그 약초를 손에 넣은 후 기쁜마음으로 우르크 시로 향했는데 이미 해가 진 뒤 였습니다 왕은 피곤했습니다 왕은 몸을 씻으려고 냇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뱀한마리가 기어다니다가 안타깝게도 약초의 냄새를 맡고 먹어버린 것입니다...왕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엔키두가 죽었을때와 같은 허무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뒤 왕은 영원한것을 찾지 않고 이 세상의 즐거움을 찾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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