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공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티원쓰 2023. 2. 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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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어린시절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 경에 아테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무렵 그리스에는 100여 개의 작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아테네는 그리스의 중심지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뒷날 서양 문화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건장한 체구에 이마는 약간 벗겨지고 눈은 툭 튀어나왔습니다 또 코는 크고 넓적했으며 양쪽 볼은 늘어졌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이들의 마구 놀려대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걸어가면서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각에만 골똘했습니다 그런 소크라테스는 18세가 되자 그리스의 현자로 알려진 아르케라오스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겠다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르케라오스는 소크라테스가 평범한 소년이 아님을 깨닫고 그를 가르치는 대신 말벗이 되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아르케라오스의 집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날이 갈수록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사고방식과 지혜와 겸손함에 감탄했습니다 25살의 청년이 된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놀랄 만큼 쌓였으며 체구 까지 늠름하여 아주 의젓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연구

그 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소크라테세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을 알고 또 그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사람은 사람들을 올바르게 알아야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들을 빼놓지 않고 연구하면서 배우고 싶은 욕망을 채웠습니다 또 욕심을 부리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과도 사귀어보고 욕심이 죄를 부른다는 사실또한 느꼈습니다 그는 게으르고 욕심많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사귀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을 문답식으로 대화하면서 부드럽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아테네는 이른바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소피스트란 그리스어로 지자 현인의 뜻으로써 기원전 5세기 경에 주로 아테네의 자유인으로서 필요한 교양과 변론술을 가르치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소피스트 중에는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프로다코스 등이 유명한데 후기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변론술을 나쁘게 이용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궤변가를 뜻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그의 친구이자 제자이기도한 카이레폰이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을 찾아가서 기울어 가는 아테네인의 정신을 깨우쳐 일으킬 현인이 누구냐고 묻자 그 사람은 오직 소크라테스 뿐이다 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카이레폰은 매우 기뻐하며 곧 아테네로 달려와 소크라테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자 소크라테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믿고 있었고 또 아테네에는 자기보다 훌륭한 정치인 예술가들이 많은데 신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기쁘기 보다는 커다란 의문에 쌓여 이것을 풀어보려 정치가 문학가 예술가 등을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명예와 명성과 이익을 위해서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고 큰 실망을 안고 말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 보고 크게 깨달은 것은 오히려 유명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더 현명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그들과 비교해 보았으나 다른 점을 알수가 없었기 떄문에 직접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을 찾아가서 물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죽시 아테네를 떠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로 들어가는 입구에 쓰여진 네 글귀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이 글귀를 보고 비로소 자기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자신을 잘 알기 떄문에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테네 백성들은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깨우치기로 결심하고 교만과 부패와 명예와 권력과 사치와 허영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 자신을 알라고 서슴지 않고 충고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51세에 결혼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악하기로 소문이 많았으나 처음부터 그렇게 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결혼후의 가정이 몹시 가난했기 떄문에 바가지를 자주 긁었고 또 자신의 성미를 억누를 수가 없었기 떄문에 화를 냈던 것입니다 여기서 유명한 말이 나온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악한 것을 보고 "결혼을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결혼을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고 대답했습니다...


#독배를 들다

아테네의 정치가나 귀족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사회가 불안해져서 나라는 차차 기울어졌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악한 인간들을 꾸짖었습니다 사람들을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였으며 그를 두려워 하여 피했습니다 사람들은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원전399년 봄에 아테네의 법정에 소크라테스를 고소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이 죄목이 쓰여져 있습니다 첫째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고 다이모니온이라는 신령적인 것을 만들어 국가의 신을 모독했다 둘째 청년들을 부추겨 헛된 생각을 가르친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떳떳하게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신전을 지키는 관리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법정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윽고 재판이 시작되어 고소인들이 고소한 까닭을 밝히자 재판을 구경나온 사람들이 그에게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크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는 아무 죄도 없으나 나를 시기하고 해치려는 자들에 의해 이 법정에 섰습니다 그들이 어째서 나를 해치려고 하는지 그 까닭은 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악을 행하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진술이 끝나고 배심원들의 투표는 280대 220표로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이날의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순순히 받아들이며 "나에게 죄가 없음은 오직 신만이 안다" 라고 말했습니다 71세의 소크라테스는 한 달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인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와서 모든 준비를 해놓았으니 어두워지면 탈옥하라고 권했으나 고개를 저으면서 "그들의 성의는 고마우나 그렇지 않겠네" 기원전 399년 봄날 저녁 소크라테스는 친구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독약을 마시고 얼마후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플라톤

이는 기원전 427년 5월에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플라톤이 태어났을 무렵에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리스톤은 아테네의 마지막 왕인 코드로스의 후손이었는데 플라톤이 어릴적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은 어릴적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으며 17세에 군대에 들어가서 19세에 제대한 뒤에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희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플라톤은 자신이 쓴 작품을 가지고 극장을 찾아가던 중에 허름한 옷을 입은 소크라테스가 맨발로 서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연설에 감동을 받고 자신이 고생해서 쓴 희곡의 원고를 미련없이 찢어버리고 이제부터 철학을 공부하겠다며 결심했습니다 며칠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찾아가서 제자가 되겠다고 간청하자 소크라테스는 그의 사람됨을 알고 받아들였습니다 플라톤은 9년동안 그를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은뒤에 정치가들은 그의 제자들에게까지 압박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기에 플라톤은 항상 무엇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아테네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진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여행중에는 열심히 글을 썼고 그 뒤에도 계속 글을 써서 모두 30권 이상의 책을 펴냈는데 거의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학생들에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학문 연구와 글 쓰는 일과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해 왔습니다 또한 그는 위대한 철학자가 왕이 되어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항상 꿈꾸어 왔습니다 그런 플라톤의 생각이 44세때에 쓴 국가론에 담겨져 있습니다 플라톤은 기원전347년에 글을 쓰다가 펜을 쥔 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