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공부

민족의 형성

티원쓰 2023. 5. 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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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관한 문제는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원시 시대의 역사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고고학적이며 기술적인 인접 과학의 연구방법으로 그 시대의 대강의 모습이나마 알아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종합적인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7만 전의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한 이래 기원전 6천 년의 신석기 시대를 거쳐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시대의 연모의 발달과 함께 점차 새롭고 다양한 문화와 사회조직을 만들면서 발전하였습니다 구석기 시대는 석기를 사용하고 무리를 지어 생활하였는데 이때는 고기 잡이와 사냥 채집 등으로 주로 영위하였습니다 사냥 채집을 하며 강가나 낮은 구름지대 등 온난다습한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해안이나 강가에 움집을 짓고 생활해 나갔는 바 혈연을 중심으로 한 부족 사회이며 평등 사회를 이끌어 나갔던 거싱 특징이었습니다 신석기인들은 비록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규모 있는 사회생활과 문화예술 부문에서 상당한 수준의 걸작품을 만들면서 우리나라에 민족적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형성에 대해

먼 옛날 우리 민족이 최초로 자리잡고 생활하기 시작한 터전은 오늘날 동북삼성 일대를 비롯하여 한반도에 이르는 광할한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그 시기는 구석기 시대부터였다고 추측됩니다 이 당시의 자연 환경은 빙하기가 끝나가는 시기였으므로 기후나 주변 환경 변화가 매우 심하였습니다 아직 빙하기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해수면이 매우 낮아 중국 대륙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가 육지로 이어져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차 기온이 올라가고 빙하가 서서히 녹으면서 해안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 환경 속에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먹을 양식을 찾아 이동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기원전 5천년으로 부터 기원전 3천년에 이르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기온이 올라가 우리나라의 환경뿐만 아닌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기원전부터는 해수면이 또다시 낮아져 서서히 오늘날의 해안선을 형성 유지해온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구석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았을까요? 그동안 여러 가지 학설이 있었지만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충북 단양의 금굴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약 70만년 전부터 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앞선 시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약 200만 년 전이고 시베리아의 경우 약 100만 년 전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떄문입니다 또한 덕천의 승리산 동굴과 단양의 상시 동굴에서는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라는 두가지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는 사람의 화석이 발견되어 크게 주목 받은바 있습니다 또한 충북 청원의 두루봉 동굴과 평양의 만달리 등 여러 지역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머리뼈 모양의 여러 가지 화석이 발굴되어 이 지역에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널리 퍼져 단조로운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뒤빙하기가 끝나갈 즈음에 구석기에 이어 신석기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구석기 사람들과는 달리 해안가나 저지대 강가에 정착해서 수렵과 어업을 영위하면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한곳에 정착해서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등 점차 생활이 안정되어 가자 그것을 토대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동북삼성의 오서 지역을 비롯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일대에 널리 퍼져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의 민족을 형성했던 핵심체가 되었다고 짐작됩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을 예맥 또는 한족으로 부른 흔적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호칭은 동이족 이었습니다 그뜻은 동쪽 오랑캐 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해가 뜨는 동쪽에 있는 종족 또는 활 잘 쏘는 큰 민족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중국과 동삼성 및 한반도 일대에 살던 종족을 이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원래 동이족의 거주지는 중국 서북부 섬서성 기산의 서쪽 지방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타고 주변의 여러 나라를 습격하는 북방계 유목 민족의 압력을 받아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섬서성 한성현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지금의 북경 지방인 하북성 고안현을 거쳐 한 갈래는 산동 반도 쪽으로 내려가 회하 이남까지 널리 퍼져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관해 중국의 고대 문헌에는 우리 민족이 우이 내이 회의 및 서이라는 호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또 한 갈래는 다시 동쪽으로 나가 요서와 요동지방을 거쳐 동삼성 일대와 한반도로 내려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고조선이 마치 중국의 진이나 한나라 처럼 통일된 큰 나라를 건설했다는 견해는 몇 가지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았던 지역은 매우 광범위 하지만 동으로 남으로 자주 이동해야 했기 떄문에 전 지역을 통일한 국가가 세워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이 정착한 지역마다 몇 개의 왕국들이 세워진 듯하며 고조선을 비롯해 요동성 일대의 고죽국 서주 부근에 자리 잡은 서언왕의 나라 등은 꽤나 번성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중국의 3대 고대 국가인 하 은 주 가운데 은나라는 중국 민족과는 거리가 먼 동이족이 세운 국가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유는 중국 민족이 세운 하/주 나라 문명과 은나라 문명은 문화적 성격이 확연히 다르고 은나라 문화 유적에서 나온 수십 구의 두개골이 중국 민족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은나라 유적에서 발굴된 두개골은 앞뒤 길이와 양 옆의 폭이 비슷하여 동굴동굴한 우리 민족과 매우 유사하며 앞 뒤 길이가 양 옆보다 긴 중국 민족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에서 이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은나라가 중국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인 확실할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라는 증거도 매우 희박하기 떄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만약 은나라가 정말 우리 민족이 건국한 나라라는 사실을 증명할수 있다면 우리 민족은 세계 고전 문명을 건설한 매우 뛰어난 민족일 뿐만 아닌 중국 고대 문명의 뿌리를 우리 민족이 이륙한 셈이 될 것입니다